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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오키] 사진

#이사 2016. 7. 8. 00:54



“뭐 먹을 것 좀 내놔 봐요.”



탁자에 엎어져 있던 오키타가 불쑥 고개를 들었다. 소파에 드러누워 점프를 읽고 있던 긴토키는 헛웃음을 삼켰다. 요구하는 모양새가 너무도 당당해서 반사적으로 몸을 일으켜 주방으로 향할 뻔 했다. 줄곧 잡지 위로 꽂혀있던 시선이 빙그르 돌아서 아이를 쳐다보았다.



“이건 어디서 온 날강도야? 백주대낮에 우리 집에 강도가 다 들었네.”



“여긴 손님 대접을 원래 이런 식으로 합니까? 심지어 물 한 잔도 안 내놓고.”



“긴씨를 뭘로 보는 거야. 해결사 사무소는 그런 몰염치한 곳이 아니에요.”



다만 소이치로군이 손님이 아닐 뿐이지. 긴토키는 덧붙였다. 아이가 손님이 아니게 된 건 꽤나 오래된 이야기였다. 지금도 손님의 태도라기엔 녀석은 지나치게 저희 집 같은 모양새로 널브러져 있었다. 탁자에 머리를 부비는 녀석은 나른한 고양이처럼 기지개를 켰다. 손가락이 꿈틀꿈틀 거렸다.



“배고파요 형씨.”



“너희 집에 가.”



사람이 왜 그렇게 인정머리가 없습니까.



오키타는 자리를 털고 일어나 소파로 터덜터덜 걸어왔다. 그리고 긴토키가 읽고 있던 점프를 집어 들더니 바닥으로 휙 내던졌다. 갑작스러운 심통에도 어지간히 이골이 났는지 긴토키는 비어있는 손을 두어번 흔들어 보다가 뒤통수와 소파의 틈새로 집어넣어 팔베개를 할 따름이었다. 눈까지 지그시 감는 게 일어날 마음은 전혀 없어보였다. 남자의 가슴팍이 비자 오키타는 털썩 그의 배 위로 올라앉았다. ‘커헉!’ 사람 한 명 분의 압박 때문에 격하게 숨을 토해내는 게 보였다. 



“나 오랜만인데 안 보고 싶었습니까? 가란 소리를 잘도 하네요.”



“소, 소이치로군. 숨, 막혀.”



“그대로 어디 숨 막혀 뒈져보시던가.”



나한테는 가란 소리 했다고 이런 짓을 하는 주제에 너는 죽으라는 소리를 그렇게 손쉽게 하기냐. 어느 모로 봐도 네 쪽이 더 악질이잖아. 



앓는 소리로도 꿋꿋하게 할 말을 하는 긴토키를 보며 오키타는 무덤덤하게 고개를 기울였다. 그리고 몸을 앞뒤로 조금 흔들자, 반동에 맞춰서 긴토키의 신음소리는 점점 더 커져갔다.



“뭐, 컥! 말로 해!”



“사람이 말로 하는 건 두 번까지죠.”



“야! 삼세번까지는 해주라고!”



긴토키가 비명을 꽥 지르자 그제야 조금 몸의 힘을 뺀 오키타는 가부좌를 틀고 있던 자세를 풀어 무릎으로 소파를 짚었다. 여전히 그의 배 위에 올라타고 있기는 했지만 그래도 양 옆으로 닿은 무릎에 무게가 분산되자 조금 견딜만해진 긴토키는 상체를 일으키려 했다. 하지만 오키타의 손이 이마를 꾹 눌러 그의 행동을 저지했다.



굳은살이 배인 딱딱한 손바닥이 아래로 압박을 가했다. 떨쳐내려 하면 떨쳐내지 못할 수준은 아니었지만 녀석을 힘으로 이겨봤자 돌아오는 건 아무것도 없을 것을 알기에, 긴토키는 그냥 하는 대로 내버려 두었다.



“긴씨는 누굴 올려다보는 걸 싫어한다고 요녀석아.”



투덜거리며 그는 소파 팔걸이에 머리를 기댔다.



“그래요? 기승위 좋아하길래 그건 또 몰랐네요.”



이마를 덮은 손을 치우고 오키타는 질 나쁘게 웃었다. 그 말에 긴토키는 짐짓 어이없다는 얼굴로 대꾸했다.



“섹스 스타일로 사람의 성향을 파악하려는 것만큼 무서운 일은 없다, 너? 그리고 정상위로 하면 못 견뎌 하는 게 누군데.”



“저도 누가 머리위에서 내다려 보면 참을 수가 없어서요. 아 뭐, 섹스 스타일과 개인의 성향과는 관계없다고 했나요?”



관심 없다는 얼굴로 맞받아치며 오키타는 손을 긴토키의 바지 주머니에 쏙 넣었다. 얼마 되지도 않는 공간을 부지런히 뒤적거리는 작은 손에 걸리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사탕 같은 거 잘도 들고 다니더니 없어요? 늘어진 목소리에 실망감이 묻어있었다. 일반적인 미각을 가진 사람이라면 질색하는 게 당연한 개밥조차 아무렇지도 않게 먹던 오키타를 떠올리며 긴토키가 한숨을 쉬었다.



“안하던 짓을 하는 걸 보니 또 주구장창 굶었나보네. 대체 몇 끼나 거른 거야?”



“글쎄요, 기억 안 나는데 그냥 좀 배고프네요.”



오키타는 동전 하나 나오지 않는 주머니에서 손을 빼고 반대편을 뒤졌다. 주머니 속으로 쏙 들어가 허벅지 언저리를 긁는 손짓은 갈고리처럼 먼지 한 톨까지 긁어낼 기세였다. 어쩐지 긴토키는 목덜미가 간질간질해졌다. 스스로의 주머니 사정을 아는 그는 수확이 없을게 뻔한 손짓을 떨쳐내고 녀석을 데리고 나가 뭔가를  먹이는 편이 좋다는 걸 알면서도 그 가벼운 접촉이 기분 좋아서 조금만 더, 하며 몸을 맡겼다.

의도가 별로 담기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주머니를 헤집는 손이 피부 위로 닿을 때마다 묘한 감상이 튀어나왔다.



“지금 거기 엄청 위험하다는 건 알고 있는 겁니까, 소이치로군…”



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주머니 속에서 곰실거리던 손이 또 다시 소득 없이 바깥으로 빠져나왔다. 긴토키는 아랫입술을 슬쩍 핥으며 아이를 올려다보았다. 배고파서 한껏 예민해졌을 오키타는 찌푸림 하나 없이 말간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가 알고 있는 한, 저 뚱한 얼굴을 사라지게 할 수 있는 건 원초적이고 본능적인 자극뿐이었다. 그것도 이성을 붙들고 있을 수 없을 만큼 강렬한 걸로만. 



“…그 좋아하는 당분 하나가 없습니까?”



아이는 무심하게 내뱉으며 긴토키의 겉옷을 들쳤다. 그리고 하얀 유카타 자락에 손을 넣어 가슴팍을 뒤적거렸다. 아까보다 한층 더 위험한 지점을 이렇게 사심 없이 매만지는 손길이라니. 긴토키의 눈이 가느스름해지며 아이를 응시했다. 슬슬 입질이 오려고 들었다. 어디가 좀 불끈불끈 해지려고 하는데?



노골적인 시선에도 아랑곳 않고 안주머니에 손을 집어넣은 오키타는 뭔가 바스락거리며 손끝에 걸리자 반색을 하며 그것을 끄집어냈다. 하지만 네모반듯한 종이 쪼가리는 원하던 것과는 거리가 멀어보였다. 제법 기쁜 표정이 떠오르려던 오키타의 얼굴이 다시 본래대로 가라앉았다.



“뭡니까 이건.”



무척이나 익숙한 얼굴이 네모 쪼가리 안에서 브이 자를 그리고 있었다. 기껏 포즈는 취해놓고서 종이 속 인물은 웃음하나 걸리지 않은 뚱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사진이잖아.”



긴토키는 대답을 하며 아이가 들고 있던 것을 천천히 받아들었다. 자연스러운 움직임이었기에 오키타 역시 순순히 그것을 넘겨주었다. 안주머니에 누군가의 사진을 넣고 다니는 건 흔히 있을 수 있는 일이었지만 그래도 오키타는 조금 얼떨떨한 기분이 들었다. 왜냐면 사진 속 인물이 다름 아닌 본인이었기 때문이었다. 대체 그게 뭐였지 싶어서 머리를 굴리는데 불현듯 꽤 오래전의 기억이 떠올랐다. 한적한 바닷가에 살고 있던 자매의 자살소동이 있었을 즈음이었다. 이름이 우라라였던가. 길거리에서 조교플레이를 했다고 나중에 히지카타에게 혼이 났었더랬지. 오키타는 좋지 않은 기억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때로부터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보니 그 사진을 찍었던 날이 어렵지 않게 수면위로 올라왔다. 곤도를 찾으러 시무라가의 도장에 갔던 날이었다. 한창 나무에 안경을 씌우고 사진에 열을 올리던 긴토키의 손에 이끌려 안경을 쓰고 카메라 앞에 세워졌더랬다. 이번엔 또 무슨 허튼 짓을 하는 것인지 궁금해져서 함께 어울렸던 게 결국은 필름 한통을 다 쓰고 나서야 끝이 났다. 부자연스럽게 안경을 쓰고 있는 걸 보면 아무래도 그때의 사진인 모양이었다. 



“아, 혹시 한 장 빼먹었어요?”



“응?”



“그때 찍었던 사진 얼마 뒤에 인화해서 전부 가져다 줬잖아요.”



“그랬나….”



“그랬나는 무슨…. 필요 없다고 했는데도 기어코 떠넘기더니 한 장 깜빡했나 보네요?”



오키타는 짧게 웃었다. 그러더니 긴토키가 도로 품으로 집어넣으려던 사진을 다시 가져가 살폈다. 역시나 그 때의 사진이 맞았다. 사진속의 자신은 재미없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 자연스럽게 당시의 기억이 떠올라 오키타는 스르륵 웃었다.



신파치로 위장도 해준데다가 결국 들통 나긴 했어도 시답지 않은 연극에 동참해준 대가라며 긴토키는 불쑥 사진 꾸러미를 떠넘기며 말했더랬다. 오키타는 그것을 받아들 때만해도 썩 탐탁지 않았다. 애초에 그는 사진을 별로 좋아하지도 않았고 앨범 같은 게 있지도 않았으니 영 쓸모가 없었던 것이다. 누님께 소포로 붙였더라면 좋아했을지도, 하는 부질없는 생각을 하며 그는 긴토키에게 필요 없다고 사진을 돌려주었다. 



‘이런 걸 어디다 씁니까. 방도 좁은데 형씨가 가는 길에 버려줘요.’



하지만 기껏 가져온 것을 돌려받아 그런지 아니면 덧붙인 말이 신경에 거슬렸던 것인지 긴토키는 냉큼 표정을 구기며 말했다.



‘야 너는, 무슨 애가 자기 사진을 그렇게 함부로 버리래?’



‘네? 그야 쓸모가 없으니까요. 내가 누구처럼 병에다 사진이랑 담아서 펜팔을 구할 것도 아니고.’



‘소이치로군은 가져온 사람의 성의라는 것에 대해서 생각해 본적 있을라나?’



‘뭐… 일단은 고마워요 형씨. 필요 이상으로 신세진 것 때문에 떨떠름한 그쪽 마음은 받은 걸로 칠게요.’



그렇게 말하자 아마 긴토키는 자신의 이마에 딱밤을 먹이고 냉큼 사진 꾸러미를 다시 손에 쥐어주었던 것 같다. 얼얼한 이마를 문지르며 눈을 모로 뜬 오키타를 보며 피식 웃은 그는 느슨한 유카타에 한쪽 팔을 괴면서 여유작작한 목소리로 얘기했다.



‘긴씨는 별로 그렇게 생각 안하거든? 신세는 아마 그쪽에서 우리 애들한테 훨씬 많이 졌을 거라고. 그러니까 그거랑 별개로 사진은 그냥 선물이야. 봐줄 거라곤 얼굴밖에 없는 꼬맹이가 한참 예쁠 때 기록이라도 많이 남겨둬야지 안 그래?’



‘내가 왜 봐줄게 얼굴 밖에 없습니까? 직업도 돈도 권력도 그쪽보단 쓸 만한 수준인데?’



‘…이 상황에서 돈이나 권력을 들먹이는 시점에서부터 끝장인거야.’



‘뭐가요?’



‘어린애로써의 귀여움이랄까. 순수함이랄까. 얼굴로 밀어붙이면 다 될 거라고 믿는 대책 없는 낙관 같은 거.’



‘시답지 않은 소리 그만해요.’



‘너야말로 시답지 않은 부분에서 고집 부리지 말고 사진이나 모아둬. 나중에 검사할거야.’



‘나 참… 형씨는 남의 사진에 뭘 그리 집착합니까.’



몇 마디 더 다투는 사이에 사진은 결국 받아서 서랍장 구석에 넣어두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사진은 지나간 시간을 담아두는 것이라 하였지만, 오키타에게 있어 그 사진에 담겨진 건 그것을 찍었던 시간보다는 오히려 그것을 건네받던 당시의 긴토키와의 시간이었다. 별것도 아니지만 그래도 잃어버리는 것보다는 나은 것 같기도 하고.



문득 떠오른 생각이 부끄러울 만큼 낯간지러워서 오키타는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조금 닳은 사진의 귀퉁이를 쓸었다. 



“깜빡하고 하나 빼먹었으면 그냥 버리면 되지 그깟 사진 한 장이 뭐라고 이렇게 넣어가지고 다닙니까.”



“…….”



어딘가 멋쩍어 하는 것을 보며 오키타는 별 수 없다는 듯 사진을 팔랑팔랑 거렸다. 이상한데서 마음이 약한 남자였다. 사진정도 버린다고 해서 뭐 어떻게 되는 것도 아닌데.



“그럼 내가 가져갈게요, 이거.”



오키타가 주머니에 종이 쪼가리를 넣으려는 순간 긴토키의 손이 갑자기 그 움직임을 막아섰다. 한 손으로는 오키타의 손목을 잡더니 다른 손은 조심스럽게 거기에 들려있던 사진을 빼앗아갔다. 왜 그러냐는 표정과 함께 동그래지는 오키타의 눈을 슬그머니 피하며 긴토키는 재빠르게 안주머니 속으로 사진을 감췄다. 



“이건 내꺼야.”



“…내 사진이잖아요?”



“…….”



“…….”



“필름은 내거였어. 인화도 내 돈으로 했고.”



“아니 그게 아니고….”



“…….”



긴토키는 그답지 않게 시선을 외면하고 볼을 긁적였다. 조금 황당한 얼굴로 오키타는 중얼중얼 아무 말이나 내뱉었다.



“내 사진 가지고 뭐하게요?”



“뭐하긴.”



“…….”



“자기위로나… 자기위로 같은 거?”



오히려 말하는 긴토키는 다소 뻔뻔한 음성을 하고 있었지만 듣고 있던 오키타는 순간 말문이 막혀서 한참이나 돌이라도 맞은 얼굴로 굳어있었다. 그리고 이내 정신을 차린 아이는 벌떡 일어나 해결사 사무실을 박차고 나갔다. 멀어지는 녀석의 귓바퀴가 발갛게 물들어 있었다.



긴토키는 뒷머리를 긁적거리며 오키타가 내던지고 간 겉옷을 챙겨들고 뒤따라 자리에서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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