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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오키] 여로

#이사 2016. 7. 8. 01:42



“다녀올게요.”



“…혼자서 괜찮겠어?”



곤도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아이의 표정을 몇 번이고 살폈다. 부슈행 열차에 혼자 몸을 실은 적은 셀 수도 없었지만 이렇게 염려 섞인 배웅을 받은 적은 그간 한 번도 없었다. 그건 자신이 평소와 같았더라면 홀로 먼 길을 떠나는 것에 딱히 염려를 받을 만큼 어리지 않다는 뜻임과 동시에, 더 이상 그곳에서도 저를 맞이해줄 사람이 없다는 것을 뜻했다. 이젠 정말로 혼자가 되었구나 실감하며 오키타는 고개를 끄덕였다. 최대한 그의 염려를 덜어주고자 웃어보였지만 오히려 곤도는 그럴수록 더욱 안쓰러운 표정을 지었다. 당장이라도 열차 위로 올라타려는 그를 만류하며 오키타는 손을 흔들었다. 다시 올 테니 걱정 말라고.



안내방송이 울리고 역무원의 깃발과 함께 열차는 천천히 선로를 따라 움직였다. 창가에 턱을 괴고 오키타는 무미건조하게 바깥 풍경을 쳐다보았다. 덜컹거리는 차체의 움직임에 몸을 맡기고 그는 서늘한 유리창에 이마를 기댔다. 장례식이 끝난 지 벌써 보름이 지났다. 시간은 느리게 흐른 것도 빠르게 흐른 것도 아닌, 그저 평소와 같았을 따름이었지만 마음을 추스르기에 넉넉할 만큼 길었다. 그녀는 이 세상에 없었다. 그리고 자신은 그 사실을 체하지 않을 만큼 느리게, 어느 한 조각 남김없이 모조리 소화시켜야만 했다. 눈을 감자 의지를 배제한 채 흔들흔들 거리는 몸이 깊은 물속을 떠다니듯 유영했다.








중요한 짐은 대부분 그녀가 에도로 올라오면서 들고 왔었기 때문에 그 집에 남아있는 거라곤 거의가 버려야 할 것들 뿐이었다. 오키타는 집 구석구석을 돌며 다시 쓸 수 있는 것들은 전부 고물상에 헐값으로 넘기고 다시 쓸 수 없는 것들만 골라서 마당으로 모았다. 마당에 모아진 물건은 대개가 그 자신에 관한 것이었다.



제가 어릴 적 입었던 옷, 읽었던 책, 가지고 놀던 잡동사니조차도 하나도 버려지지 않은 채 그곳에서 집을 지키고 있었다. 그것이 과연 그녀에게 어떠한 의미를 가지고 있었을까 곱씹으며 오키타는 마지막으로 부엌의 찬장을 열었다. 매운 조미료들이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었다. 어릴 적엔 단지 이상한 입맛이라는 사소한 것마저도 그녀가 히지카타와 공통점이 있다는 게 싫었다. 그래서 종종 건강을 위해서라며 심술 맞게 버려버리던 조미료들을 그녀는 못내 아까워하며 오키타의 손이 닿지 않는 곳에 모아 두곤 했었다. 주기적으로 사고 버리고 숨기고를 반복하던 어릴 적 기억이 숨길 수 없이 표면으로 떠올랐다. 그때만 해도 아무리 까치발을 들어봤자 너무 멀던 찬장은 어느새 그의 시선높이에 있었다. 손을 뻗어 하나씩 하나씩 양념 병들을 끌어 모았다. 온갖 빨간색으로 가득 차 있던 찬장에는 이젠 뽀얀 먼지밖에 남아있지 않았다.



오키타는 밖으로 나와 와르르 품에 안은 것들을 마당에 쏟아 부었다. 그리고 양 손을 마주쳐 남은 먼지를 털더니 담벼락에 기대져있던 입구가 뻥 뚫린 드럼통을 마당 한가운데로 끌어왔다. 드럼통에 천천히 물건들을 담으며 오키타는 코를 훌쩍거렸다. 내리는 비를 고스란히 맞았던 그 날 이후 한참이 지났음에도 감기는 떨어질 줄을 몰랐다. 혹은 그것마저도 내버리고 싶지 않아하는 미련이던가.



하나씩 정체를 다시 한 번 확인하듯 느린 속도로 물건을 드럼통에 옮겨 담는 동안 오키타는 멀거니 그것들에서 제 누나의 흔적을 확인하고 찾고 가려냈다. 손이 저릴 정도로 그들의 무게는 묵직하게 그를 내리눌렀다.



바닥에 남은 것 없이 물건을 전부 드럼통에 담고 나서야 오키타는 미리 오는 길에 사온 휘발유를 그 안에 부었다. 추적추적 옷가지가 젖어드는 소리가 났다. 마지막 남은 한 방울까지 탈탈 털어 넣는 걸로 모자라 병째로 휘발유를 드럼통 안에 부어 넣은 뒤, 주머니를 뒤졌다. 손가락 끝에 결려 나온 건 그저께 히지카타의 방에서 말없이 들고 나온 라이터였다. 컬렉션이라도 열 모양으로 라이터를 바꿔대는 남자니 하나쯤은 없어도 모르겠거니 싶어 굳이 허락을 맡진 않았다.



원래는 당신을 여기 넣으려다 라이터로 봐준 겁니다. 덤덤한 목소리로 섬뜩한 얘기를 중얼거린 오키타는 불씨를 당겨 드럼통 안으로 라이터를 던져 넣었다. 불길이 삽시간에 타올랐다. 하늘을 향해 일렁거리는 불꽃을 보며 오키타는 그 앞에 쪼그려 앉았다. 얼마나 뜨거운지 바로 위의 공기가 굴절되어 부들부들 흔들렸다.



눈을 감았다. 시야에 어둠이 내려앉으면 조심스럽게 그녀도 옆에 함께 내려앉았다. 뒤돌아보지 않기로 한 거잖아. 그렇게 쉽게 미안하다고 하면 못써. 나직한 목소리가 머리를 쓰다듬었다.



하지만 누나. 이제 정말로 혼자가 되어버린 걸요. 



내 갑옷은 이제 어디에도 내려놓을 수 없고, 난 어디에서도 온전히 맨몸으로 쉴 수가 없어요.



바람이 머리칼을 스쳤다. 오키타는 바로 세운 무릎에 얼굴을 묻었다. 발끝이 자꾸만 아래로, 아래로 가라앉은 기분이 들었다. 마치 무거운 무언가를 발목에 달아둔 것 같았다. 죄책감과도 닮았고 그리움과도 닮은 그것의 이름을 뭐라고 붙이면 좋을까.



“앗 뜨!”



그 한없는 추락을 깨고, 상념을 부수며 별안간 누군가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눈을 뜨자 보인 건 바람이 부는 방향에 서 있는 남자였다. 불씨가 타닥타닥 튀고 있었다. 옷자락에 옮겨 붙은 불씨를 온갖 방정을 떨며 꺼뜨린 남자는 새하얀 달님을 머리에 얹고 있었다. 눈을 감기 전만 해도 분명 해가 다 넘어가지 않은 채로 남아있었는데 그 짧은 사이에 자취를 감춰버린 것인지 어느새 사방이 어두웠다.



“해가… 눈 감았다 뜨니 사라져있네…”



꽤나 멍청해 보이는 목소리로 그렇게 느릿느릿 말을 내뱉자 긴토키는 바람 빠진 풍선 소리를 내며 짧게 웃었다. 그리고 섬광처럼 아주 잠시 나타났다 사그라져버린 미소 대신 퉁명스럽게 미간에 주름을 잡은 채 그는 입을 열었다.



“소이치로군. 놀랄 건 겨우 그것뿐이야?”



“…형씨가 오늘따라 엄청 창백해 보여요.”



“…턱 밑에 이렇게 커다란 불길을 얹고 있으면 누구나 다 그래 보일걸? 어릴 때 손전등 가지고 유령 장난 제일 많이 해보게 생긴 녀석이 왜 모르는 척이야.”



긴토키는 대수롭지 않게 오키타를 유령 놀이 깨나 즐겼던 꼬꼬마로 정의 내리며 휘적휘적 다가왔다. 제 쪽으로 다가오는 긴토키를 보며 자리를 털고 일어나려던 순간 오키타는 현기증을 느끼며 휘청했다. 다리가 풀리며 중심을 잃자 반사적으로 앞에 있는 드럼통을 잡으려 손이 뻗어나갔다. 그리고 그 달궈진 철판을 잡기 직전 팔목을 낚아챈 건 화들짝 놀란 긴토키였다. 손목을 그러쥔 남자의 단단한 손이 희었다. 이번엔 불길 아래 있는 것도 아닌데 저 남자는 왜 이렇게 온 몸이 창백해 보일까, 생각하며 오키타는 고개를 들었다. 긴토키는 동공이 확장된 눈으로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정신 좀 차리지 그래? 차라리 넘어지는 게 낫지, 저거 맨손으로 잡았다간 손 가죽 홀랑 벗겨질 거 몰라서 이래?”



동그란 눈동자가 얼떨떨한 표정으로 긴토키를 응시하다 이내 당황한 빛을 거두었다. 토끼눈이 한번 깜빡 하는 동시에, 다시 원래의 건방진 꼬맹이의 눈으로 돌아왔다.



“…사고가 뭐 몰라서 일어납니까. 나도 모르는 순간 아차 하고 일어나는 게 사고지. 안 데였으면 되는 거 아니에요.”



퉁명스런 대답에 긴토키는 자꾸만 저도 모르게 높아지는 혈압을 진정시키며 잡고 있던 손을 놓았다. 놀란 마음에 좀 세게 쥐었는지 오키타는 나머지 손으로 슬슬 제 팔목을 가져다 문질렀다. 둘이 동시에 입을 다물었기 때문에 그들 사이에는 자연스럽게 침묵이 감돌았다. 초침이 한 바퀴 쯤 돌았을까. 속으로 숫자를 세던 긴토키는 뒷머리를 긁적거리며 아이에게 손을 뻗었다. 오키타는 멀뚱멀뚱 그것을 보다가 주머니를 뒤져 자신의 지갑을 손에 쥐어주었다. 의외로 묵직한 지갑에 다소 놀란 긴토키는 그것을 곁눈으로 흘겨보더니 자신의 주머니에 챙겨 넣고서 손을 다시 한 번 더 뻗었다.



“그게 전분데요? 더 없어요.”



“너는 어떻게 생겨먹은 애가 이 상황에서 지갑을 주냐?”



어이없는 심정을 담뿍 담은 목소리가 귓전에 울렸다. 오키타는 고개를 기울이며 무슨 소린지 모르겠다는 얼굴을 했다.



“기름 값 달라는 거 아니었어요? 대문에 스쿠터 세워져 있던데.”



“그 스쿠터를 같이 타고 가자는 소리로는 안 보이디?”



“왜요? 나 오늘 여기서 자고 갈 건데요? 기차 벌써 끊겼어요.”



오키타는 눈짓으로 뒤의 집을 가리켰다. 긴토키는 헛웃음을 뱉으며 한 걸음 다가와 오키타의 손을 움켜쥐었다.



“난방도 안 돼. 이불도 없어. 뭐 어쩌려고 여기서 잔대? 신센구미 돌격대장, 고향 집에서 동사. 이런 기사로 신문 1면 장식해봤자 수치스러워서 어디 자랑이나 할 수 있겠어?”



“…뭡니까. 그러는 형씨야 말로 우리 집에 이불 없다는 건 어떻게 알았어요? 돈 없는 부랑자, 신센구미 돌격대장 고향집에서 노숙하다 덜미 잡혀. 이런 건 신문 1면은 고사하고 사회면 귀퉁이에도 못 실릴 텐데.”



“아니거든?! 긴씨가 어딜 봐서 그런 파렴치한 짓을 한다는 거야! 난 그냥 이집에서 나오는 고물상 아저씨를 만났을 뿐이거든요?! 대체 이 몸을 어떻게 보고! 온 몸을 다 털어도 결백 말고는 나올 게 없는 사람이라고 내가!”



평소대로 능글거리며 말을 흘려보낼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긴토키는 괜히 펄쩍 뛰는 시늉을 하며 오키타를 이끌었다. 꽉 붙들린 손이 피가 통하지 않아 저릿했다. 아픈데요? 작지만 못 들었을 리 없는 그의 말을 무시하며 긴토키는 기어코 스쿠터 앞까지 오키타를 끌고 왔다.



“겨울이불 여름이불 골고루 다 팔아 드셨더만. 너 덮고 잘 거 한 장쯤은 남길만한 지혜가 없는 거야?”



스쿠터 앞에서 멈춰선 그는 다소 책망하는 말투로 아이를 다그쳤다. 바닥을 몇 초간 응시하던 오키타는 언젠가 신세졌던 기억이 있는 그의 스쿠터를 응시하며 느리게 입을 열었다.



“……형씨.”



“왜.”



“참견하지 마요. 이게 내 방식이니까.”



“…….”



“대체 여긴 왜 온 겁니까…. 도대체 어떻게 알고.”



오키타의 목소리는 지나치게 가라앉아 있었다. 낮고 음울한 목소리가 그들 사이를 빙글빙글 맴돌았다. 오키타는 늘 헤져있던 안장이 깨끗해진 것을 아무 생각 없이 보며 눈을 내리깔았다. 아주 짧은 찰나동안의 생각을 끝내고 긴토키는 오키타의 턱을 잡고 제 쪽으로 시선을 맞추게 했다.



“아니. 넌 나랑 가야할걸? 평생 여기서 살 거 아니면.”



그리고 남은 손으로는 아까 품에 넣어둔 오키타의 지갑을 달랑거리며 꺼내보였다. 재빠른 손놀림으로 제 지갑을 채가려는 아이의 손을 가뿐하게 피한 그는 안주머니로 다시 지갑을 쏙 집어넣었다. 오키타의 눈이 미세하게 찌푸려졌다. 가벼운 짜증을 담은 그 얼굴을 뒤로하고 긴토키는 손잡이에 걸어둔 헬멧을 꺼내 아이의 머리통에 눌러 씌웠다.



“가자. 한 시간만 달리면 꽤 커다란 마을하나 나오더라. 뭐든 간에 넌 여기서 좀 벗어날 필요가 있어.”



헬멧을 조이고 오키타를 강제로 끌어다 스쿠터에 앉힌 긴토키는 자신도 고글을 쓰고선 앞자리에 앉았다. 오키타도 더 이상은 반항하지 않고 얌전히 긴토키의 옷자락을 붙잡았다. 헛웃음이 비슬비슬 새어나왔다. 드르륵 하며 거친 마찰음과 함께 시동 걸리는 소리가 들렸다.



“허 참… 남의 이별여행을 망쳐도 유분수지.”



작은 웃음조각에 섞여서 오키타의 목소리가 긴토키의 뒷덜미에 닿았다. 그 역시 대강 웃으며 여상하게 대답했다.



“그렇게 뭐 있어 보이는 말 붙여주면 기분이 나아져? 그래봐야 자학이잖아.”



“섬세함이라곤 병아리 눈썹만큼도 없는 사람이네요 형씨도 참.”



“그럴싸해 보이는 이름 붙이고 싶으면 긴씨가 하나 해 줄게. 삽질과 자학의 이중주라던가, 현실도피를 위한 불장난과 청승의 하모니라던가.”



“남의 감정을 그렇게 깔아뭉개면 형씨야 말로 기분이 나아집니까?”



오키타는 말을 마침과 동시에 별안간 좌우로 흔들리는 스쿠터에 놀라며 긴토키의 허리를 휘감았다. 자연스럽게 몸이 조금 더 밀착되자 숨길 수 없는 살아있는 인간으로부터의 온기가 느껴졌다. 활활 타오르던 불길 앞에서조차 느끼지 못하였던 따스함이 어째서 다정한 말이라곤 생전 뱉을 줄도 모르는 이 남자에게서 느껴지는지 아이러니했다. 오키타는 본능적으로 온기를 찾아 허리에 두른 팔을 조금 더 세게 감았다.얼굴을 세차게 때리는 바람을 피해 너른 등판에 뺨을 묻음과 동시에 숨을 몰아쉬었다. 남자의 등이 움찔 떨리는 옷자락 너머에서 느껴졌다. 저 대신에 바람을 고스란히 맞고 있는 남자의 답도 없는 오지랖에 피로한 머리는 대신에 웃음을 내보냈다. 몰아치는 바람에 섞여 미소가 흔적도 없이 공기 중으로 흩어졌다.



“너무 붙지 마. 위험해.”



“…여긴 대체 왜 왔어요. 내가 그렇게나 불쌍해요? 연고도 없는 부슈까지 달려와 줄만큼?”



“…그럼 불쌍하지. 돈도 없고, 이불도 없는데, 잘 곳마저 없고.”



“혹시 내가 자살이라도 할까봐 걱정됐습니까? 아는 놈이 죽어서 꿈자리 뒤숭숭할까봐?”



“…아니야 멍청아.”



“목소리 엄청 떨리는데요? 진짠가 보네. 하긴 뭐… 그런 생각이 안 들래야 안들 수 없는 환경이긴 하죠. 이대로 누님의 뒤를 따르는 것도 썩 나쁘진 않겠지만.”



“뭐가 어째?”



은근하고 교묘하게도 아니고 그냥 대놓고 떠봤음에도 긴토키는 단박에 낚이며 버럭 소리 질렀다. 오키타는 그럴 줄 알았다는 얼굴로 어이 없이 대답했다.



“…아니라면서요, 멍청아. 형씨는 어째 미끼를 던지는 족족 물어댑니까.”



“…그래 아냐. 아니라고 했잖아.”



“너무 늦은 감이 없잖아 있지만 그래도 믿어주는 걸로 할게요.”



덜컹. 작은 자갈을 밟았는지 스쿠터가 살짝 흔들렸다. 이런 속도로는 어지간하면 떨어질리 없다는 걸 알면서도 오키타는 팔을 조금 더 세게 둘렀다. 얼마나 바싹 붙어 앉았는지 쿵쿵거리는 심장소리가 들렸다. 자장가 같다는 생각을 하는 동안 긴토키는 변명을 이었다.



“네가 그 고릴라나 마요라나 신센구미를 등질 리 없다는 거 알아. …알긴 아는데.”



“아는데? 그냥 태평양 같은 오지랖이 시켰습니까?”



오키타는 피식 웃으며 뺨을 그의 옷자락 위로 부볐다. 동정이라도 좋았다. 드럼통 같은 걸로는 데우지 못하던 마음이 그제야 조금 포근해졌다. 숨 막히게 괴롭던 때도 이 등 뒤에 숨어 있으면 다 괜찮아질 거라는 마음이 들었었다. 폭우를 뚫고 아무도 없는 도로를 달리는 그 순간, 누나의 행복을 이 손으로 끊으러 간다는 참담함 속에서도 남자는 말없이 저를 위로하였다. 빗줄기와 함께 눈물이 과연 흐르긴 했는지는, 본인조차도 알지 못했다. 동정이라도 좋았다. 상대를 가리지 않는 그의 상냥함이 정말로는 싫지 않았다. 하지만….



한숨처럼 오키타는 말을 이었다.



“누님 때문에 신세 많이 졌습니다. 그래도 이젠 더 베풀지 마요. 뭐든 간에 갚을 자신 없으니까.”



나직한 음성은 더없이 부드럽게 내뱉어졌지만 정작 그걸 듣는 긴토키는 숨이 턱 막히는 기분이었다. 누군가 목을 조르는 기분을 느끼며 그는 겨우 힘을 짜내 너무 붙지 말라니까. 하며 오키타에게 주의를 줄 뿐이었다. 아이는 아주 잠시 입을 다물었다 싶더니 다시 더 섬세하게 칼날을 벼려 긴토키를 향해 던졌다.



“어디서 콱 죽어버리지 않을 테니 걱정 말고 이만 돌아가요. 나는 불장난의 탈을 쓴 자기학대 조금만 더 하다가 가고 싶어요.”



긴토키는 스쿠터의 속도를 조금 줄였다. 덜덜 거리는 엔진 음에 섞여서 한 톤 낮아진 목소리가 토해졌다. 참담함과 애잔함이 정체를 알 수 없을 정도로 뒤범벅 된 채 쏟아져 나왔다.



“……그 정도론 내가 안심 할 수가 없어.”



“네?”



“……넌 정말 눈치가 왜 이렇게 없냐? 고작 너 자살할까봐 그게 걱정돼서 내가 이 먼 부슈까지 하던 일 만사 제치고 달려왔겠어? 겨우 동정 같은 가벼운 감정으로 지 불행에 취해 삽질하는 녀석을 기어이 끌고 오겠냐고. 그것도 이 밤중에. 내가 아무렴 그렇게 할 일 없는 사람일까!”



“…그럼요?”



“난 말이야, 니가 고작 죽지 않고 살아있는 걸로는 만족이 안 된다고! 행복해지기까지 하지 않는다면 안심할 수가 없어.”



“…….”



“쪽팔리게 너한테 이런 말까지 해야겠어? 난 이제 내려서 네놈 얼굴을 어떻게 보라고!!”



오키타는 그렇게 소리를 빽 지르는 긴토키의 등에 한 번 더 기댔다. 비포장도로를 달리는 스쿠터는 울퉁불퉁한 길을 따라 흔들렸다.



“…잠시라도 슬퍼하는 걸 멈추면 죄책감이 든다는 거, 나도 알아. 넌 가족이니까 그런 생각 하는 게 당연하기도 하고. …그러니까 거기서 벗어나게 해주는 건 타인의 손을 좀 빌리라고. 가족도 뭣도 아닌 내가 이용 당해줄 테니까.”



남자의 음성은 질척질척하지도 구질구질하지도 않았다. 구원의 질감은 그가 평소 생각하던 것과는 전혀 달랐다. 대체 이 남자는 어떻게 알고 있는 걸까. 슬퍼하는 것보단 슬퍼하지 않게 될까봐 더 무서웠다는 걸. 시끄러운 현실에 속해 있으면 자꾸만 그녀의 부재는 잊혀져갔다. 기억하면 슬퍼서 괴로웠지만, 기억하지 않는 동안에는 보다 더한 죄책감에 시달렸다.



웃고 있을 자격과 잊어버릴 수 있는 기회를 전부 빼앗긴 사람처럼 오도 가도 못 하는 현실에 갇혀서 오키타는 밤마다 뜬눈으로 지새웠다. 아무리 절절히 앓고 또 앓아도 적당하지 않았다. 그녀의 부재에 적당할 정도의 슬픔이란 없었다. 이젠 되었다고, 스스로는 도무지 결론지을 수가 없었다. 오키타는 눈을 감았다. 오늘 하루 종일 나지 않던 눈물이 이제야 쏟아질 것만 같았다. 손에 힘을 조금 더 주자 긴토키가 숨넘어갈 것처럼 말했다.



“그리고 소이치로군. 좀 떨어져. 긴씨가 아무리 나이스 드라이버라도 불끈불끈한 상태로 운전하면 진짜 위험하거든? 넌 지금 저승 행으로 가는 급행열차를 타는 거라고.”



“싫은데요.”



“제발 좀! 같이 사이좋게 논두렁이라도 구르고 싶어?”



“상관없어요. 나도 지금 형씨랑 한 판 뒹굴고 싶은 기분이니까.”



“………아…… 너 진짜… 하지 말라니까. …아직 한 시간은 더 달려야 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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