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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지오키] Letter

#이사 2016. 7. 13. 03:08



안녕하세요, 곤도상. 직접 가서 전해도 될 이야기지만, 많이 궁금하실 것 같아서 이렇게 편지를 보냅니다. 저는 별 어려움 없이 잘 도착했습니다. 그리고 걱정하시던 이곳도 굉장히 좋은 곳이에요. 초목에 둘러싸인 크지 않은 오두막이지만 있을 건 다 있어서 딱히 큰 불편이 있는 것 같진 않아요. 물론 대장님이 그렇게 좋아하는 과자나 아이스크림 같은 건 없지만. 있다 해도 그런 불량식품은 어차피 귀신같이 집요한 남자가 먹지도 못하게 할 거니까 상관없대요. 그리고 집에서 십 분가량만 걸어도 맑은 물이 흐르는 냇가가 있어서 더울 때는 종종 그곳에서 놀기도 한다고 해요.



부장님 잔소리는 여전히 귀찮아 죽겠다고 얘기 하지만 대장님은 적어도 병원에 있을 때보다는 더 많이 웃어요. 왜, 대장님 특유의 어린애 같은 꺄르르 하는 웃음 있잖아요. 작은 오두막에서는 매일같이 가벼운 웃음이 끊이지 않아요. 행복해 보여서 참 다행이에요. 걱정하실 거 하나도 없어요.



이렇게 공기 좋은 곳에서 웃는 대장님을 보면 마치 아무 일 없던 평소의 그 모습을 보는 것 같아서 가끔 잊어버리기도 해요. 그가 아프다는 거 말이에요. 사실 처음에는 아무도 안 믿었죠? 국장님도 뭔가 착오가 있을 거라고 의사선생님 멱살부터 틀어잡고 그랬잖아요. 그냥 감기가 좀 심해져서 병원에 간 것뿐인데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냐고. 국장님이 하도 다른 사람과 착각한 거라고 우겨대서 결국 재검사까지 했던 거 기억해요.



이제야 하는 말인데 전 국장님이 다른 사람에게 그렇게 화를 내는 모습은 처음 봤어요. 아마 그만큼 믿기 힘들었던 거죠? 사실 저도 그랬어요. 그 전까지 대장님이 워낙 건강한 것처럼 굴었어야 말이죠. 의사가 이렇게 될 때까지 아무도 몰랐다는 게 말이 되냐며 우리를 질책할 만큼.



제가 밖에서 간호사들이 하는 말을 들은 적이 있는데요, 아마 각혈도 많이 했을 거라고 해요. 참기 힘든 고통이었을 텐데, 하면서 믿기 힘들다는 목소리의 그녀들을 보면서 제가 얼마나 울컥했을지 상상되세요?



마음 같아서는 상관이고 뭐고 다 제치고 달려가 그 사람을 흠씬 두들겨 패주고 싶었어요. 실제로도 그럴 생각이었구요. 너무 화가 나면 목구멍이 따끔거린다는 걸 처음 알았어요. 있는 대로 열이 받아서 병실로 달려갔는데 결국 전 손끝하나 못 건드렸죠. 그렇게 기운 없이 아파보이는 사람이 대장님이라니. 너무 놀랐거든요. 말 그대로 환자 같은 안색이었어요. 아시죠, 그게 대장님한테 얼마나 안 어울리는 단어인지.



그래서 침대에 누워있는 핏기 없는 창백한 얼굴을 보는 순간 저는 화내려던 건 다 잊어버린 채 그냥 막 울었어요. 그 사람을 붙들고 이게 대체 뭐냐면서 계속 울었어요. 진짜 꼴불견 이었겠죠? 근데 더 심한 건 대장님이에요.



열에 들떠서 잔뜩 상기된 얼굴로 그 사람이 제일먼저 한 소리라고는 다른 사람한테 비밀이라느니… 특히 국장님과 히지카타씨에게는 절대 말하지 말라는 당부였거든요. 전 그 모습이 너무 미워서 쓰러진 당신을 업고 온 게 국장님이라고 말해 버렸고요. 다 갈라진 목소리가 씁쓸한 표정으로 웃으면서 들켜버렸네 라고 하는데, 얼마나 야속하던지.



대장님은 대체 뭐가 잘못됐기에 그 모양으로 자란 걸까요? 아픈데도 안 아픈 척. 약한데도 강한 척. 악당 짓은 혼자 다 하면서 정작 실속은 하나도 없고…. 답답하기 짝이 없어요. 근데 국장님도 이건 모르실 거예요. 그 사람에게 그나마 남아있는 순진한 미소 같은 건 전부 국장님 전용이라는 거. 우리한테는 얼마나 가차 없는데요. 처음 아셨죠?

아무튼 그래서 가끔은 대장님을 보면 목표가 정해지면 주변 상황은 생각도 않고 무조건 돌진하는 멧돼지가 생각나요. 무식하리만큼 저돌적인 부분이 닮았잖아요. 재수 없으면 목표에 닿기도 전에 나무뿌리에 걸려서 넘어지는데도 그냥 달리죠.



아, 말해두지만 절대 국장님을 탓하는 건 아니에요. 원인의 대부분은 전부 대장님이 자처하신 거니까요. 이 말을 하면 대장님은 내가 자처해서 내가 넘어진 거니까 너는 상관없어 라고 매정하게 잘라내겠지만, 국장님도 아시죠? 그건 틀린 거라는 거.



타인과 만나 부대끼고 얽혀서 이미 인연이 시작된 이상 사람은 혼자만 살아가는 게 아니잖아요. 적어도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사람들과의 관계가 두터워지면 질수록 자신의 더 많은 부분을 남에게 맡겨놓고 있는 거라고. 우리가 비록 한 몸에서 태어난 건 아니지만 한 집에서 살았던 세월이 얼만데요.



그러니까 이렇게 함부로 아프거나 다치거나 사라지면 곤란하다는 걸 모른다는 게 그의 정말 나쁜 점 같아요. 늘 어른스러운 대장님이 그래서 가끔은 덜 큰 어린애 같고 그런 건지도 모르겠어요.



아, 부장님은 생각보다 아주 잘 지내세요. 지금도 대장님이 오랫동안 문 열어놓고 있었다고 옆에서 잔소리를 하고 있어요. 안 믿기시죠? 대장님의 행방을 모를 때는 그렇게 정신 놓은 사람처럼 나사가 몇 개쯤 빠져있더니. 아무튼 솔직하지 못한 사람이에요. 저는 아직도 생생히 기억하는데 말이에요.



국장님이 대장님의 거짓 탈영 소식을 전하던 날 부장님이 제일 먼저 벌떡 일어나셨잖아요. 얼빠진 사람처럼. 절대 그럴 리가 없다고.



그러고 보면 대장님도 참 한결같은 사람이었나 봐요. 항상 돌발행동을 일삼으면서도 그것의 주축만은 언제나 똑같은 곳을 향해 있었기에 그렇게 모두들 믿어주는 거겠죠? 그는 절대로 그럴 사람이 아니라고. 그래서 자신이 찾아오겠다고 나서는 사람들을 한사코 말리느라 국장님과 제가 엄청 애를 먹었었죠.



사실 신센구미 대원들도 죄다 눈치라고는 말아 먹었는지 어쩜 그리 둔해요? 어떻게 다른 사람도 아니고 국장님이 대장님을 포기하는데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안 드는지. 저는 만약 사실을 몰랐더라도 분명 국장님의 태도를 보고 알아차렸을 거예요.



…지금 비웃고 계시죠? 그렇지만 이건 진짜라구요! 이래봬도 전 감찰인걸요. 분위기도 잘 읽고 눈치도 빨라요. 그에 비해 부장님은 툭하면 남들에게 속으면서 사니까 모를 만도 했죠. 그러니까 그렇게 말도 안 되게 날뛴 거구요. 사실 전 꼭지 풀린 부장님이 너무 무서워서 다 말해버릴 뻔 했어요. 그때 국장님이 그러셨죠.



신센구미가 먼저냐, 오키타가 우선이냐. 



정말 한참동안 고민하는 부장님을 보면서 알았어요. 그 남자는 신센구미와 대장님을 따로 떼어놓고 생각해본 적 없었다는 걸. 결국 아무 말도 못하고 돌아서는 부장님을 보면서 저도 정말 마음 아팠어요. 전부 다 알고 있었으면서도 마음속 한 구석에서는 부장님이 어딘가에서 단지 작은 변덕으로 둔영을 뛰쳐나가 놀고 있던 대장님을 잡아오길 바라고 있었나 봐요.



대체 왜 사람은 이렇게 이루어 질 수 없는 소망을 놓지 못하는 걸까요. 실은 지금도 그래요. 이렇게 건강하게 부장님과 싸우는 대장님을 보면서 혹시나 이게 전부 연극 아니었을까 하고 상상해요. 그럼 웃기게도 눈이 저절로 부장님의 왼손으로 가요. 그 손등에 진하게 남은 흉터를 보면서 헛된 희망을 버리려고 노력하거든요. 바보 같다는 거, 저도 알아요. 하지만 국장님도 이곳에 오시면 제 마음 이해하실 겁니다.



여긴 정말 세상과 반걸음 떨어진 장소 같거든요. 자꾸만 현실의 일이 희미해지고 의심스러워지죠. 좋은 건지 나쁜 건지는 잘 모르겠어요….



뭐, 잘 모르겠는 김에 제가 아는 비밀을 하나 더 알려드릴게요.



저한테 무슨 비밀이 이렇게 많으냐고요? 이런 게 감찰의 운명 아니겠어요. 비밀의 바다에서 허우적거리는 거.



감당할 수 없는 것들이 너무 많이 흘러 들어와서 가끔은 정말 숨을 못 쉬겠어요. 남들이 모르는 것을 안다는 건 자랑스럽거나 기쁘다기보다는 슬프거나 미안할 때가 더 많으니까요.



어 그렇다고 감찰일이 싫다고 한 건 아니니까 해고하시면 곤란해요!




아무튼 부장님이 우연히 대장님의 검진기록을 본 건 사실 실수가 아니었어요. 제가 일부러 그랬거든요. 도저히 부장님 꼴을 눈뜨고는 못 봐주겠다 싶었어요.



대장님이 많이 아프다는 걸 알고 동요해서 자기 손등을 칼로 찍은 건 국장님도 보셨죠? 근데 대장님이 진짜 탈영했다고 믿었던 때는 오죽했겠어요. 책임감과 의무감 때문에 겉으로 내색은 못했어도 부장님은 정말 정상이 아니었어요.



밥도 제대로 못 먹고 잠도 제대로 못 자고 가끔 허공에 대고 말하다가 혼자 깜짝 놀라고…. 그대로 뒀다간 정말 큰일 날 것 같았어요. 길가다가 대장님 나이대의 애들만 보면 달려가서 얼굴을 꼭 확인하고 보내주는 부장님을 보면서 처음으로 그 사람 명령을 지키지 않고 싶었어요.



제가 정말 대장님 명령을 안 따른 적이 없었는데도 자꾸만 이건 아니라는 느낌이 들었어요. 나중에, 그러니까 언젠가 잃고서 아파하는 한이 있더라도 최소한 살아있는 동안의 시간을 흘려보내는 건 아깝다고 생각했어요. 이별이라는 건 일찍 해치운다고 마음이 편해지는 놈들이 아니잖아요. 제가 생각이 짧아서 그런 걸까요?



그런데 말이죠…. 언젠가 양이지사들의 아지트에서 신원을 알 수 없는 불에 탄 시체가 발견된 적 있었잖아요. 그 시체의 신원을 확인하려고 둔영으로 운반하는 내내 부장님의 손이 얼마나 떨고 있었는지 아세요? 얼굴은 파랗게 질려서 다리는 후들후들 떨리는 부장님이 얼마나 안쓰러웠으면 시체라고는 기겁을 하는 제가 자진해서 바꿔들었잖아요.



그때는 정신없어서 아마 아무도 몰랐을 거예요. 부검결과가 나오기 까지 부장님이 얼마나 그 시체가 대장님 것이 아니라는 걸 확인하려고 애쓰고 있었는지.



결국 그 사람은 대장님이 아니었던 걸로 밝혀졌던 날 밤, 유난히 목이 말라서 자다가 깼거든요. 그런데 대장님 방에 누군가의 인기척이 느껴지더라구요. 혹시 도둑은 아닐까 겁나서 다른 사람들을 깨울까 했었는데. 달빛을 받아 살며시 들여다본 방안에는 부장님이 앉아있는 거 아니겠어요. 좀 더 가까이 가보니까 다 큰 남자가 남겨져 있던 대장님의 제복을 안고서 멍청하게 넋 놓고 있는 표정을 짓고 있었어요.



저는 왠지 그 곳을 떠날 수가 없어서 한참을 못 박힌 채 그 방 앞에 서있었어요. 이유는 아직도 잘 모르겠지만, 그냥 필연적으로 그랬는지도 몰라요. 우연히 그날 밤 제가 잠에서 깼고 우연히 인기척을 느꼈고 우연히 그를 지켜본 것들이 사실은 필연인지도 모르죠. 왜냐면…, 부장님이 결국은 울기 시작했거든요.



소리도 못 내고 그냥 입술을 깨물며 온 몸으로 서럽게 우는 부장님을 보면서 그제야 대장님이 틀렸다는 걸 확신했어요. 물론 나름대로 그 사람은 다른 이들에게 죽어가는 모습을 보이기 싫었던 거겠지만, 그 자존심은 지켜주고 싶지 않았어요. 저는 정말 맹세코 죽기 전까지 부장님이 우는 걸 볼 수 있으리라고 상상도 해본 적 없던 일개 부대원이었거든요.



국장님…, 국장님은 눈치 채셨나요? 두 사람이 평범한 상사와 부하의 관계보다 좀 더 깊은 사이라는 거. 어쩌면 정작 본인 두 사람만 인지하지 못했던 걸지도 몰라요. 그렇게 오래 함께 있다 보면 오히려 감각이 둔해져서 익숙해진 것일 뿐이라고 생각해버리니까요.



근데 전 정말 알고 있었어요. 무슨 일이 있었던 건 아니지만 그냥 그런 건 보고 있으면 알게 되는 거잖아요? 그래서 제가 부장님한테 대장이 많이 아프다고 알려줘 버렸어요. 우연을 가장해서. 하지만 잘못했다고 생각은 안 해요. 두 사람 다 지금은 행복해 보이는 걸요.



국장님 저는요, 사랑해서 보낸다는 말 아직도 이해 못하겠어요. 잠깐 아프면 나중에 행복해 진다는 게 다 뭐냐구요. 당장에 이렇게 죽을 듯이 괴로운데. 남겨진 시간도 얼마 없으면서 허세부리는 대장님이 바보 같아 보였다고 한다면 화내실 건가요?



하지만 생각해 보세요. 남아있는 시간을 버림으로써 줄 수 있는 건 살다보면 만날지도 모른다는 기대뿐이잖아요. 그 길기만 한 허상뿐인 기대가 눈을 마주하고 살아있음을 피부로 느끼며 함께하는 몇 개월과 혹은 겨우 며칠일지라도, 맞바꿀 수 있을 만큼 가치 있을 리가 없어요.



아, 그리고 대장님이 있는 곳을 당장 말하라고 윽박지르는 부장님 때문에 많이 당황하셨죠? 저한테도 어느 정도 책임이 있으니까 이렇게나마 사과드릴게요. 하지만 역시 전 그때의 용기 있는 저를 칭찬해 주고 싶어요. 아마 제가 살면서 스스로 내린 결정 중 가장 뿌듯한 결정일거예요. 두고두고 자랑스러워할 할 생각이에요.



혹시 두 사람의 재회에 대해서도 궁금하신가요? 저는 그런 것들이 너무 궁금해서 한참을 대장님을 붙들고 얘기를 들었거든요. 그 당시의 대장님은 건강상태가 거의 최악이었대요. 물만 먹어도 자꾸만 게워내곤 해서 며칠을 굶은 상태로 하루에도 몇 번씩 쏟아지는 각혈이 목을 망가뜨려서 목소리도 낼 수 없을 지경이었대요. 이제 정말 가는구나 하고 생각하는 찰나 제일 아쉬운 게 부장님 이었다고 하더라구요. 왜냐고 이유를 물었을 때 대장님이 뭐라고 했는지 짐작이나 하시겠어요?



그 뻔뻔한 대장님이 조금 망설이면서 어물거리는 말투로 



‘다른 사람들은 다음 생에서, 아니면 그 다음 생이나, 그것도 아니면 그 다음 다음 생에서라도 만날 자신이 있는데, 그 사람만은 몇 번을 다시 태어나도 절대 못 만날 것 같았어’



라고 하는데…….



지금도 생각하면 마음이 시큰해지려고 해요. 그럴 거면서 왜 처음부터 함께 해달라고 말 못했는지…. 제가 질책할 때마다 대장은 그냥 말없이 웃기만 하고 부장님은 이제라도 함께하는데 아무렴 어떠냐고 하셔요. 사람이 극한상황에서 오래 견디다 보면 작은 일에도 쉽게 만족할 수 있게 되나 봐요. 아니면 다신 잡을 수 없을 거라고 포기했던 손을 잡게 된 기쁨이 그것들을 전부 뛰어넘을 수 있기 때문이던가.



더 가관인 건 처음 부장님이 이곳에 들어서자마자 한 얘기가 ‘너 죽을래.’였대요. 자신이 도착하기 전에 그가 떠나버리면 어쩌나 하며 정신 나간 사람처럼 불안해하던 게 누군데, 만나자마자 죽을래가 뭐냐구요.



아무튼 기운 없이 죽어가던 대장님이 반가워하거나 놀랄 틈도 없이 죽이랑 약부터 챙겨먹였대요. 언행이 모순이죠. 근데 신기한 게 뭐냐면 물만 먹어도 토하던 사람이 부장님이 챙겨줬더니 죽 한 그릇을 다 먹고 약까지 먹었다 하더라구요. 마치 뭔가 마음에 들지 않아 투정 부리던 어린애 같이. 대장님도 그 얘길 하는 중에 조금 민망해하시는 것 같아서 제가 느낀 걸 얘기하진 않았어요.



뭐 두 사람은 그렇게 잘 지내요. 대장님은 조금 말랐고 부장님은 머리가 조금 길었지만 평소와 비슷해요. 얼핏 보면 그냥 사랑의 도피를 온 사람들 쯤으로 보이지만, 그러기엔 두 사람 모두 불안정한 점이 많아요.



아침마다 대장님을 깨우는 부장님은 매일 아침이 고역인가 봐요. 혹시라도 눈뜨지 않을까봐 무섭다고 저한테 대신 부탁할 때도 종종 있었어요. 그리고 대장님은 밤에 잠들 때마다 혹시 지금이 꿈이라서 잠드는 순간 산산이 부서질까봐 무서워해요.



무리하면 다음날 못 일어난다고 필사적으로 재우려는 부장님과 몇 번이고 다짐을 받아도 잠드는 게 무서운 대장님은 밤이면 항상 실랑이를 벌여요. 그게… 너무 안타까워요.



왜 신은 꼭 이런 운명을 만드시는 걸까요.

그리고 왜 잃어버린 다음에야 소중했다는 걸 깨닫는 걸까요.



대장님은 아직 젊잖아요…. 좀 더 늙었을 때 아파도 되는 거잖아요. 몇 번의 사랑을 거치고 몇 번의 이별을 견디고 남들처럼 나이 먹는 걸 무서워하기도 해보고 주변에서 자꾸 재촉하는 결혼을 부담스러워도 하고 아이를 안고 오는 동료들을 질투도 해보고 그렇게 점점 무뎌지고 심심해지다가 문득 이 지루하고 시들한 인생에 회의를 느낄 때 쯤.

혹시 아픈 것이 반드시 타고난 운명이라면, 그때쯤 아프다가 주변의 사랑을 확인하면서… 그렇게 미련이 지금보다 조금이라도 적을 때 그때 떠나도 되는데…. 지금은 너무해요. 옆에 저렇게 커다란 미련을 남겨두고서 감히 발걸음을 뗄 수나 있을까요.



이런 말 해봤자 소용없다는 거 저도 알아요. 그래서 대장님 앞에서는 이런 생각 하고 있다는 티 안내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아무렴 제가 당사자들보다 아프겠어요.



국장님, 이곳은 분명 예쁘고 사랑스럽지만 두 번 올 곳은 못되는 거 같아요. 아니 사실대로 말하자면 국장님은 차라리 오시지 않는 게 더 좋을 것 같아요. 아마 견디기 힘드실 거예요. 대장님도 부장님도. 남겨두고 떠나야 하는 것도 남겨진 채 홀로 견뎌내야 한다는 것도.



만약 부질없는 희망을 포기하고 정리하기 위해서라면 더더욱 이곳은 오면 안 되는 곳이에요. 사람이 얼마나 나약하고 미련 넘치는 존재인지만 선명해 질뿐이니까요. 누구를 향해야 할지도 모르는 원망만을 가득 안고 그 숨이 넘어가는 모습을 기다리는 것만으로도 형용할 수 없는 쓰린 마음만 벅차오르는 걸요.



여기서 다 떨쳐버리려고 왔는데… 마지막으로 하기로 했는데… 아마 더 생각날 거예요. 이런 걸 견뎌내고 있는 부장님은 본디 그 담대함이 남들보다 컸던 건지도 모르죠.



한번은 잠든 대장님의 머리를 쓰다듬는 그에게 물어본 적이 있어요. 괜찮으냐고. 그랬더니 정말 다신 없을 쓸쓸한 표정으로 아직도 모르겠다고 하데요.



아직도 어떻게 보낼지 모르겠다고. 그 없는 하루는 상상만으로도 겁에 질려 떨게 된다고. 주저 없이 이곳으로 달려오던 그때와 변한 게 하나도 없더라고.



‘부디 떠나는 날에는, 나의 심장을 함께 가져가 주었으면 한다.’ 라고. 




제가 본 두 사람이야기는 여기서 끝이에요. 이제 곧 제가 떠나면 이곳은 다시 두 사람만의 것으로 돌아가겠죠. 처음부터 그랬던 것처럼…. 봄에는 꽃이 피고, 여름에는 비가 내리고, 가을에는 낙엽이 지고, 겨울에는 눈이 쌓이는 그 평범하고 평범한 일상이.

부디, 금방 끝나버리는 이야기가 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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