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아. 입 밖으로 나온 숨은 금세 얼어붙어, 하얀 김으로 날아올랐다. 입김을 따라 올려다 본 하늘은 비라도 쏟아질 듯 어두웠다. 날이 많이 추워졌어, 쓸쓸한 혼잣말을 삼키며 긴토키는 넉넉한 소매에 양 손을 끼워 넣었다. 차가운 손을 반대편 손목의 온기로 녹여가면서 그는 얇은 유카타를 펄럭거렸다. 그나마 해결사 사무실을 나서기 전에 문득 눈에 들어온 신파치의 목도리를 두르고 나와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그는 보송한 털실뭉치에 코끝을 파묻었다. 성기게 얽혀서 구멍이 숭숭 난 것 같아 보이던 목도리는 생각보다 따뜻해서 긴토키는 만약 그 녀석이 언제와 같이 목덜미를 훤히 내보이며 나타난다면 이거라도 빼서 둘러줘야겠다고 얼핏 생각하였다. 계절은 게으름 없이 꾸준히 흘러 어느새 낙엽들이 모두 흙더미에 파묻혀 땅으로 ..
“내가 뭘 가져왔게?” 남자는 빙글빙글 웃으며 손가락에 들린 물건을 흔들어보였다. 정체를 모를 만큼 생소한 물건은 아니었지만 그들에게 어울리거나 필요한 건 결코 아니다 보니 자신이 제대로 본 게 맞나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무런 대답도 없자 그는 조금 더 가까이 그것을 가져다댔다. 역시 매니큐어였다. 그것도 질릴 정도로 화사한 연분홍색깔의. “…뭡니까 이건?” 오키타는 당황한 얼굴로 긴토키가 에게 물었다. “용도를 묻는 거야? 예쁘게 단장하는 데 쓰이는 물건이지.” 그렇게 말하며 긴토키는 이불속에서 꾸물거리고 있던 오키타의 팔을 잡아 뺐다. 반드시 이걸 네 손에 바르겠다는 의지가 그대로 드러나는 행동이라 오키타는 헛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굳이 자신의 눈앞에서 흔들어 보일 때부터 그게 긴토키의 ..
“다녀올게요.” “…혼자서 괜찮겠어?” 곤도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아이의 표정을 몇 번이고 살폈다. 부슈행 열차에 혼자 몸을 실은 적은 셀 수도 없었지만 이렇게 염려 섞인 배웅을 받은 적은 그간 한 번도 없었다. 그건 자신이 평소와 같았더라면 홀로 먼 길을 떠나는 것에 딱히 염려를 받을 만큼 어리지 않다는 뜻임과 동시에, 더 이상 그곳에서도 저를 맞이해줄 사람이 없다는 것을 뜻했다. 이젠 정말로 혼자가 되었구나 실감하며 오키타는 고개를 끄덕였다. 최대한 그의 염려를 덜어주고자 웃어보였지만 오히려 곤도는 그럴수록 더욱 안쓰러운 표정을 지었다. 당장이라도 열차 위로 올라타려는 그를 만류하며 오키타는 손을 흔들었다. 다시 올 테니 걱정 말라고. 안내방송이 울리고 역무원의 깃발과 함께 열차는 천천히 선로를 따라 ..
“뭐 먹을 것 좀 내놔 봐요.” 탁자에 엎어져 있던 오키타가 불쑥 고개를 들었다. 소파에 드러누워 점프를 읽고 있던 긴토키는 헛웃음을 삼켰다. 요구하는 모양새가 너무도 당당해서 반사적으로 몸을 일으켜 주방으로 향할 뻔 했다. 줄곧 잡지 위로 꽂혀있던 시선이 빙그르 돌아서 아이를 쳐다보았다. “이건 어디서 온 날강도야? 백주대낮에 우리 집에 강도가 다 들었네.” “여긴 손님 대접을 원래 이런 식으로 합니까? 심지어 물 한 잔도 안 내놓고.” “긴씨를 뭘로 보는 거야. 해결사 사무소는 그런 몰염치한 곳이 아니에요.” 다만 소이치로군이 손님이 아닐 뿐이지. 긴토키는 덧붙였다. 아이가 손님이 아니게 된 건 꽤나 오래된 이야기였다. 지금도 손님의 태도라기엔 녀석은 지나치게 저희 집 같은 모양새로 널브러져 있었다...